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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잠이 한 뼘 모자란다

by 즐팅이 2013. 3. 31.

 

-시와 경계 2011년 봄호

 

잠이 한 뼘 모자란다

 

 

달빛에, 덧난 상처가 들여다보이는 밤, 이제는 없는 뒷문이 열리네. 굴뚝의 그림자가 접혀진 사잇길로 아침에 들어간, 맑은 햇살이 길 잃고 우릉우릉 우는 숲에서 스르륵 빠져나온 뱀, 기어오네. 수상한 바람이 물큰 씹히네. 달빛 꽉 찬 하얀 도라지꽃봉오리와 숨죽인 기다림, 뱀이 도라지밭에서 허물을 벗네. 복사뼈에 뱀의 이빨자국 뚜렷한 여자가, 우우 달려와 뒷문을 닫네.

 

그녀의 잠은 한 뼘이 모자라네.

 

달이 훅 벗어던진 모자가 광장에서 빙글, 툭 떨어지네. 여자의 어린 뱀들이 모자 속으로 흘러드네. 여자가, 우우 달려와 모자를 쓰네.

 

그녀는 하루를 더 식탁 위에 차리고, 소녀가 달려 나가며 작별을 말하네. 소녀의 복사뼈가 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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