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기억을 속인다
-최면술사
스무 살의 기억은 둥글게 말려서 치워진 지 오래
펼치면 다시 말리는 기억
우리가 어느 지점에서 엇갈리는지 맞춰보는데
당신은 최면술사, 왕십리와 아현동의 골목이 줄줄이 이어져 나오고
딸의 폭력에 시달리던 여자가 숨죽여 울던 옆방이 당신의 방이었다는데
게보린을 과용하던 여자가 사라지고
찾아 헤매던 딸이 들어와 울던 옆방이 내 방이었다는데
기억이 딱딱해요 당신은 셋, 둘, 하낫, 말랑말랑한 연애를 꺼내주는데
내 연애의 기억은 네모난 마당에 갇힌 지 오래
담을 넘으면 다시 담
우리가 어느 시점에서 엇갈리는지 맞춰보는데
당신은 나보고 왜 떠났느냐고 묻는다
나는 붙박이 나무, 내 그림자는 담을 넘어 달아났다가
힘없이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말랑말랑한 기억을 물고 날아간 직박구리가 당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포엠포엠 2014 가을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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