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구
모래는 밀려나고 밀려나서야 파랑(波浪)을 볼 수 있어요 해안선은 당신의 어깨를 통과한 후 선명해지고 긴 머리카락이 비린 해초처럼 자꾸 풀려나가요
파라솔 아래에 앉아 해무가 섬들을 산란하는 걸 지켜봤어요
먼 곳을 끌어당기면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건지
섬들은 왜 무인도의 감정으로 마침표를 꿈꾸는 건지
모래는 주기적으로 서쪽에서 서쪽으로 흘러왔어요 그 많던 물결무늬들, 맨발을 기억하던 입자들, 사초(砂草)가 흔들릴 때마다 뜨거운 생을 질주하던 표범장지뱀들, 잊어야 겠다는 듯이 기필코 잊을 수 없다는 듯이
해조음을 배경으로
이토록 적막한 허리
내 그리움의 반경은 넓고도 깊어
슬픔은 지금 흩어지는 중이니까
희박해질수록 멀리 갈 수 있으니까
당신이 환상일 때도 실재일 때도 내 안의 언덕은 더더욱 달구어지고 있으니까
시현실 2019 봄호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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