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쩌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사구

by 즐팅이 2019. 3. 27.


사구

 

 

 

모래는 밀려나고 밀려나서야 파랑(波浪)을 볼 수 있어요 해안선은 당신의 어깨를 통과한 후 선명해지고 긴 머리카락이 비린 해초처럼 자꾸 풀려나가요

 

파라솔 아래에 앉아 해무가 섬들을 산란하는 걸 지켜봤어요

먼 곳을 끌어당기면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건지

섬들은 왜 무인도의 감정으로 마침표를 꿈꾸는 건지

 

모래는 주기적으로 서쪽에서 서쪽으로 흘러왔어요 그 많던 물결무늬들, 맨발을 기억하던 입자들, 사초(砂草)가 흔들릴 때마다 뜨거운 생을 질주하던 표범장지뱀들, 잊어야 겠다는 듯이 기필코 잊을 수 없다는 듯이

 

해조음을 배경으로

이토록 적막한 허리

 

내 그리움의 반경은 넓고도 깊어

슬픔은 지금 흩어지는 중이니까

희박해질수록 멀리 갈 수 있으니까

당신이 환상일 때도 실재일 때도 내 안의 언덕은 더더욱 달구어지고 있으니까


시현실 2019 봄호 75

 


'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린  (0) 2019.05.28
고이 꾸온(Gỏi cuốn)  (0) 2019.05.28
심벌즈  (0) 2019.03.27
사라진 장르  (0) 2019.03.16
포트홀(Pothole)  (0) 2019.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