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시

나는 - 장이엽 시인님

즐팅이 2014. 4. 3. 23:16

 

 

 나는

         - 장이엽

 

 

나는 은하수를 건너온 처녀좌의 원숭이

나는 꼬투리 속에 갇힌 콩알

나는 가로등 밑 거미줄에 걸린 나방

나는 깊은 밤에 혼자 우는 귀뚜라미

나는 뿌리 없이 꺾어 심은 마른 개나리

나는 과자 부스러기를 물고 가는 배고픈 개미

나는 바비 인형의 벗겨진 신발 한 짝

나는 고흐의 파란 방에 놓인 귀 떨어진 컵

나는 억새풀의 반짝이는 은비늘

나는 사하라 사막에 숨어 있는 모래늪

나는 빙하 속에 정박당한 낡은 어선

나는 황태덕장에 걸려 있는 눈 뜬 명태

나는 사라진 명왕성의 먼지 입자

나는 탱탱하게 몸을 조여 울리는 소가죽

나는 투망에 잡힌 물뱀

나는 앙코르와트의 오래 된 사원

나는 악보 안의 4분 쉼표

나는 티베트 고지에서 펄럭이는 오색 깃발

나는 어항 수초 사이를 누비는 체리새우

나는 세렝게티 초원의 치타와 달리기를 하던 톰슨가젤

나는 개망초 얼굴 위로 예고 없이 쏟아지던 소낙비

나는 징검다리 사이의 물보라

나는 이솝 동화 세상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나는 한 발 한 발 으름넝쿨을 재며 걷는 어린 자벌레

나는 천축국을 찾아가는 근두운 탄 손오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