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를 말하다

[김보숙의 시 읽기] 우리詩 - 2012년 9월호

즐팅이 2013. 3. 31. 19:32

 

 

강물이 발목을 묶다.

 

김 춘

 

강은 귀를 열어 놓는다. 귓속에서 풀려나오는 소리들을

건져 올리던 부리가 긴 새, 강물에 발목이 걸린다.

새들은 묵음지대의 틈새를 안다. 강물과 강물사이로

발목을 뺄 줄도 안다. 그러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화인을 지닌 강물이 돌아설 때가 있다.

그 순간 익사한 소리가 강물 틈새로 떠오른다.

며칠 전 스스로 강물에 발목을 묶은 부리 긴 수컷도

강물 틈새로 떠올랐다. 화들짝 솟아오르는 암컷,

허공을 찍는 순간 발톱이 한낮을 찢는다.

쏟아지는 해의 파편, 강은 수많은 파편에 찔리고도

조용히 귀를 닫고 흘러간다.

불어난 강물소리는 잃어버린 귀맛을 살려낸다. 아름다울 미자가 넉넉함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보면 불어난 강물은 넉넉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새들도 넓은 강물 소리에 귀맛을 다시었던 걸까, 소리를 낚아채려 하다가 강물에 그만 발목이 걸리고 만다. 각별한 얼굴이다. 강은 귀를 열어 놓고 많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날이 저물도록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 하나, 그 낡고 낡은 몸에서 나오는 새로운 소리. 새들은 강의 귓속에서 쏟아진 낡지만 새로운 소리를 듣기 위해 숨이 차지 않는데도 강 위에 내려 앉아 쉬었다 간다. 그리고 시간이 굽이치는 강물에 발목이 묶이고 만다. 시인에게 강의 흐름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적 시간이 아니다. 강물 안과 밖의 시차, 강물 틈새 사이로 삐져나오는 속과 겉의 시차, 이 시차를 잘 견디어 내면 가끔은 아주 가끔은 강물이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회귀의 강이다. 강물은 수많은 파편에 찔리고도 조용히 흘러간다. 휘어지는 아픔도 모른 채 시차를 달래며 흘러가고 있다.

시인은 강물의 깊이에는 연연해하지 않는다. 강물의 깊이 속으로 익사한 것들도 강물의 틈새로 떠오를 수 있다. 스스로 강물에 발목을 묶은 부리 긴 수컷도 강물 틈새로 다시 솟아오른다. 강물 깊은 곳의 시차를 이겨내고 강 위로 끌어올리는 시인의 시선이 각별하다. 산을 담을 수 있는 것은 깊이 때문이 아니라 맑음 때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부리가 긴 새들, 강물 소리에 귀맛을 다시다가 강물의 틈새를 발견한다. 시간의 깊이에 익사한 내가 시간의 틈새를 알고 솟아오른다.

 

1980년생 김보숙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1 리토피아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