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를 말하다

서범석이 본 좋은 시.084-김네잎의 [오버랩]

즐팅이 2016. 10. 4. 15:48


오버랩

                                                                   김 네잎

 

 

우리가 왜 우물처럼 흔들리는지, 어떤 우리가 달을 끌어당기는지

 

뒷면을 보여 주지 않아도 완성되는 달처럼, 뒷면을 보여 주지 않아도 다정해지는 우리가

삭제된 배경 속에서 타인을 연기하고 있네

 

우리는 어두워질수록 가까워지고, 가까워질수록 절망이 되는 종족,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의 연음이 되었고,

 

투명한 실루엣을 거둬내면 손끝으로 모여드는 흑점, 우물이 차오르는 밤

달의 주기를 건널 때마다 내 신발이 젖는 걸 너는 알까?

 

우물 속 달이 비극 하나를 낳네 이야기 밖으로 사라지는 환시幻視

                                                                                                                                      ―?시와소금?, 2016 여름.

 

 

건너뜀이 오버랩이라는 영화기법을 차용해서 형상화된 시다. 따라서 즉각적인 의미구조를 분석해 내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분석은 독자마다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높다. 그것은 현대 예술의 운명적 품격이라 할 만하다.

나는 우선 서정적 자아가 우물에 비친 달을 보면서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으로 이 시의 상황을 설정해 본다. 그리고 달이 비친 우물이 흔들리는 장면에 너와 나의 비극적 만남이 오버랩 되고 있다고 읽는다. 너와 나는 달처럼 뒷면을 보여 주지 않아도 다정해지는관계이고, ‘서로의 연음이 되어 밀착된 관계지만, ‘타인을 연기하는비극적 현실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현실을 우물 속의 달에게로 전치시키는 방법이 제목 오버랩인 것이다. 달이 떠 있는 우물은 실재의 세계이고, 거기에 겹쳐 보이는 우리들의 비극적 만남은 환시幻視처럼 흔들리다가 사라진다. 실루엣을 거둬내면 선명한 현실적 흑점이 되는데, 다달이 신발 젖는 외로움과 아픔을 인지하지 못하는 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리라.

비극적 관계의 현대적 사랑앓이가 우물==여성의 등식 속에서 원형적 이미지로 직조된 아름다움을 읽는다. 신예시인의 능숙한 바꾸기숨기기의 언어 사용 전략과 현대적 인간탐구의 믿음직한 깊이에 밝은 기대가 걸려 있다.(서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