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물고기의 시간
즐팅이
2019. 10. 2. 17:21
물고기의 시간
두 발과 두 팔은 식상하고
생각은 늘 꼬리지느러미를 남기는데
물이 없다
귀를 열지 않고도
유리 너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이야기 속 주인공은 일주일 내내 미끌거리고
질척질척 습하기만 한데
짠내가 없다
밖이 안이고 안이 밖인 이곳에선
비린 불안이 자주 발각된다
알을 입 속에 넣어 부화시키는 바나나 시클리드처럼
당신은 당신을 내 호흡 속에 숨겨두고
방치한다
분위기를 갈아 줄 태도가 없는 날들
바닥에 들러붙은 몽상들이
검게 번져 나오고
이미지들이 물풀처럼 흔들린다
이 구성엔 에피소드가 충분하지 않다
던져주는 어분처럼 흩어지는 캐릭터
불면처럼 쏟아지기를 거부하는 알약
눈뜨고 자는 버릇을 길들이기 위해
나는 소품처럼 배경을 즐긴다
-열린시학 2019 가을호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