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쩌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시

장미와 주먹 - 김지녀 시인님

by 즐팅이 2014. 6. 21.

 

 
장미와 주먹

                                     김지녀

  

오늘 밤은 길어서 구부리기에 좋다

끝을 잡아 돌리니까 밤은 잘도 돌아 서른 번째 밤은

주먹이 되어 나를 향해 멈춰 있다

좀 투박하고

비어 있지만 마음에 든다

주먹을 두 손으로 감싸고

체온을 조금 나누어 주었을 때

 

피어난 장미 서른한 번째 밤이 되기 전에

장미, 장미, 장미가 피어서 장미의 얼굴로

서른한 번째 밤은 아름답고

시들어서 고요해

가시가 돋고

그 속에 웅크려 도취해

 

주먹은 조금 더 커져 있다 오늘 밤은 길어서

촛농이 흐르고

손금이 갈라져

편지를 써야지 피어나는 것들을 잘 기억하도록

병든 담장에 기대어

장미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어주어야지

 

오늘 밤, 장미는 다시 필 거야

무거움을 버리고

차가운 주먹을 펼 거야 나를 향해, 다시

 

첫 번째 밤이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