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녀
오늘 밤은 길어서 구부리기에 좋다
끝을 잡아 돌리니까 밤은 잘도 돌아 서른 번째 밤은
주먹이 되어 나를 향해 멈춰 있다
좀 투박하고
비어 있지만 마음에 든다
주먹을 두 손으로 감싸고
체온을 조금 나누어 주었을 때
피어난 장미 서른한 번째 밤이 되기 전에
장미, 장미, 장미가 피어서 장미의 얼굴로
서른한 번째 밤은 아름답고
시들어서 고요해
가시가 돋고
그 속에 웅크려 도취해
주먹은 조금 더 커져 있다 오늘 밤은 길어서
촛농이 흐르고
손금이 갈라져
편지를 써야지 피어나는 것들을 잘 기억하도록
병든 담장에 기대어
장미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어주어야지
오늘 밤, 장미는 다시 필 거야
무거움을 버리고
차가운 주먹을 펼 거야 나를 향해, 다시
첫 번째 밤이 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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