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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김네잎11

수색조 수색조 난 눈을 뜨고 있는데 누가 나를 재웠을까 눈 위로 눈이 한없이 날린다 저녁이 나를 샅샅이 뒤지고 갔다 그런데도 꾸다 만 꿈처럼 잔상이다 이 생각은 꿈속인가 육체 속인가 여기저기 구멍 나 있다 어둠은 악몽과 흉몽과 길몽이 뒤엉킨 자리를 탐색하느라 불빛 속으로 되돌아갈 방법을 놓치고 흔들리는 손전등 불빛 삼삼오오 눈 밟는 소리 관목이 꺾이는 소리 수런거림 소란 마침내 흐느낌 이런 시나리오를 구성한 건 아니다 눈동자에 빛이 고인다 곧 깨질 것 같다 무엇을 찾습니까, 그들에게 묻는다 어떤 뒷모습은 언어를 벗어난 세계라서 윤곽을 알 수 있다 천사가 오는 데 왜 이리 긴 시간이 필요한가 괜찮다 잠은 넉넉하니까 나는 서서히 상할 테니까 - 《포엠피플 》 2023 겨울호 2023. 11. 13.
잠적 잠적 외투를 찾으러 갑니다 남겨진 마음으로 마로니에 열매가 뒹구는 산책길과 부들이 일렁이는 물가와 점원이 할인 품목을 정리하고 있는 호수공원점 CU를 지나 못 쓰게 된 날개 대신 종종종 걷는 새처럼 걷다가 이름을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돌멩이처럼 머뭇거리다가 (사해는 쓰리고 아파, 그런데 자고새 요리는 맛있었어.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자고새 요리는 정말 맛있을까 생각하다가 온통 그 생각만하다가 하마터면 밤의 리듬을 놓칠 뻔했습니다 길섶엔 죄다 말라가는 꽃들 마른 꽃이 꾸는 꿈을 털면 악몽이 왈칵 쏟아지겠죠 외투를 찾으러 갑니다 거기에 잘 있을 줄 알아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런데 오늘 나는 외투를 걸치고 나왔습니까? - 《포엠피플 》 2023 겨울호 2023. 11. 13.
상처받은 나들에게 http://aladin.kr/p/dQSa5 상처받은 나들에게 상처받은 나들에게 www.aladin.co.kr 2023. 10. 30.
동물행동학자 K 동물행동학자 K 드디어 도착한 극점은 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어둠 없는 밤이 시작되었다 빛의 혼돈 펭귄이 줄줄이 태어났다 다 같이 검고 다 같이 흰 부모와 새끼들, 날씨는 가장 공평한 방식으로 생존을 궁리하게 만든다 그래서 해가 지지 않거나 해가 뜨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점점 더 깊숙이 잠수하는 펭귄에게 위치기록계를 달았다 아무거나 먹지 마 일주일 치 한꺼번에 털어 넣지 마, 이런 당부는 펭귄에게 한 걸까 K 자신에게 한 걸까 가끔 기지로 가는 길을 잃는다 똑바로 걷는데 늘 한쪽으로 뱅뱅 돈다 사람마다 더 무거운 쪽이 있다 환장하게 환한 밤이 감옥 같아서 K는 펭귄보다 더 먼저 멸종을 택했을 거다 K가 남긴 기록장을 읽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 위해 맨 앞장부터 읽었다 깃털이 좌우 대칭인 새는 날지 못한.. 2023. 6. 14.
포도나무 포도나무 태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지속되고 있었다 비의 참견, 우기는 시간이 아니라 상태다 산부인과 의사가 의자를 당겨 앉으며 포상기태를 설명한다 난 알알이 부풀고 있는 포도송이를 상상했다 무른 열매인 줄 모르고 헛배인 줄 모르고 이렇게 끝나는 결말이라면 결국 창밖의 날씨와 창 안의 내가 동시다발이 된다, 급성 호우 손목 하나를 자르면 두 개의 손목으로 자라는 가지 탯줄을 돌돌 감아올려 몰래 옆구리가 되는 넝쿨 미치도록 부러워하며 술이 있는 밤 내 이야기는 말고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걸 그랬다 수포 속에서 작고 차가운 심장과 까만 눈동자 그대로 잠든 아기에 관한 이야기라면 - P.S 시와 징후 2023 여름호 02 2023. 6. 14.
시詩뮬라크르 2023.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