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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복층

by 즐팅이 2020. 9. 25.

복층

 

 

 

 

우리의 천장은 처음부터 다르다, 너의 것은 마침내 높고 나의 것은 은밀하게 낮다

 

지난밤 가위에 눌린 너의 기척을 명료하게 읽었다 하지만 깨우지 않았지

 

아래층에서 동물을 키우는 나와 위층에서 식물을 키우는 네가 너무 멀다

 

앵무는 조롱 속에서

게발선인장은 창 앞에서

 

다른 높이로 길들여지고 있으니까

 

앵무는 짝을 잃고 혼자서도 잘 운다

선인장은 목마름이 극에 달해도 가시만 내민다

 

그렇게 모르는 척해주는 걸까

서로 다른 취향 앞에서

너의 집착과

나의 애착, 익숙한 목적을 품는다

 

절박하지 않은 표정으로 나는 끝내 올려다보지 않고, 계단이 어제보다 늘어나서 너는 더 높은 위쪽만 본다

 

하나의 식탁에서 두 개의 시간이 매일 머물다 간다, 넌 매번 오전이고, 난 매번 오후다

 

문예바다 2020 가을호 (공모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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