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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출출하다

by 즐팅이 2014. 8. 26.

 

출출하다

 

1

풍물시장 가게의 구석진 자리에서 숫돌을 만났다 출출해진다

 

2

어머니가 숫돌에 칼을 간다 담장 넘어 개복숭아 몇 개 따오는 동안 밀가루반죽은 쫄깃해진다 지팡이로 마루를 텅텅 두드리던 아버지가 미숫가루 한 대접에 순해진다 솥에서 국물 끓어오르는 냄새가 마당을 지나 사립문 옆 개밥그릇에 담긴다 밥그릇에 코를 박은 누렁이 낑낑대는 저녁이다 반죽은 얇게 밀려 돌돌 말렸다가 썰린다 어머니의 손에 달라붙은 반죽, 마루에 떠 있는 알전구 밑으로 아홉 개의 입이 모인다 모가지를 쭉 빼고 둥글게 앉아 그릇바닥까지 덜그덕덜그덕

 

3

줄줄이 출출(出出)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노래에 발맞추어 방직공장, 전선공장의 자랑스러운 공원이 되었다 잔업 하고 출출한 날이면 칼국수를 먹는다 어머니의 등짝에 들러붙은 아홉 마리 식충이, 긴 가난을 뚝뚝 끊어내며 먹는다.

 

포엠포엠 2014 가을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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