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선
내가 떠밀려온 곳에 내가 서 있는, 이 좌표는 악몽일리 없어
막 당도한 기항지엔 항풍은 없고 두 손으로 수면을 가리키고 있는 흑암의 방식
범람하는 음악과 난파된 시간들이 굴러다니는 갑판 위 마지막은 비렸어
흩뿌려지는 이야기
유령의 입을 통해 선실 안으로 흘러들고 있었지
나는 2급 조리사, 출렁이는 것과 흔들리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감각을 가졌지
그러니 여전히 울기 전에 왜 울었는지 설명할 필요는 없어
5시간 전에 나는 눈물주를 찾는 손님에게 눈물을 따라 주었지
눈물을 탐식하는 취향에 관하여
텅 빈 동공을 보면서 잔을 들어 올리는 위안의 감정에 관하여 생각하는데
내 눈이 감기질 않아 물고기를 닮아가고 있었던 거야
생생한 층위의 식감을 찾는 손님들의 시선을 자르고 공기를 가르고 허공에 꽂힐 때
수평선 끝에서 너울이 너울 속으로 침몰하는 것이 보였지
식탁은 예감 했기에 접시를 끝까지 떨어뜨리지 않았어
세이렌의 노래가 끝없이 방향키를 홀리고 있는데 말이야
오늘밤 나는 이곳에 내려야 하는데 짐을 챙겨야 하는데
가방에 가득 찬 물 쏟아도 쏟아지지 않는 물
옷이 왜 젖은 줄 모르게 젖어 있는지
한국동서문학 2019 겨울
'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랙스완 (0) | 2020.02.24 |
---|---|
우리는 서로 같아서 (0) | 2019.12.09 |
Beethoven No. 60 (0) | 2019.12.09 |
흑단 (0) | 2019.12.09 |
떨켜 (0) | 2019.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