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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발췌

by 즐팅이 2020. 3. 11.

 

발췌

 

 

 

 

엽서, 여행 버킷 북, 서한집

그리고 카메라는 나에게

 

너는 절벽에게

 

엽서

 

여기가 끝이라는데 여전히 나는 더 가야 할 것 같아,

 

앞면에는 너머로 넘어가지 않는 해와

온통 붉게 물든 마을 광장

뾰족한 지붕 그림자가 올라 선 계단

그 아래 돋을새김처럼 뚜렷한 피사체

여자가 남자 쪽으로 휘어져 있다

남자가 건네는 연어가 무거운지

 

나도 휘어지고

 

여행 버킷 북

 

남은 페이지와 남겨진 페이지 사이에

 

삶이 무미하고 건조하다면, 대륙의 가장자리 피오르 협곡으로!

 

오늘의 나와 그 날의 너는

그곳이 죽도록 그립다

너는 이미 그것을 입증했다

 

죽음의 세계에서도 죽도록 그리운 게 있을까?

 

책에서

 

제겐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습니다,*

 

서점을 지나 깜깜한 낭하를 함께 걸은 적 있다

갑자기 사라진 우리들

서서히 나타나던 윤곽들

고독이 네 얼굴을 하고 내 손을 쥐고 있었다

 

침대 끝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카니발은 시작되고

 

카메라

 

횡단열차 유리창에 너의 모습이 첨경으로 찍혀있다

셔터를 누르던 찰나에 네가 보았던 너를

내가 보고 있는 거다

나는 네 눈을 쓸어 감긴다

 

누가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뒀나

오후의 방은 백색의 빛으로 가득하다

 

 

*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에서

 

- 포엠포엠 202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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