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엽서, 여행 버킷 북, 서한집
그리고 카메라는 나에게
너는 절벽에게
엽서
여기가 끝이라는데 여전히 나는 더 가야 할 것 같아,
앞면에는 너머로 넘어가지 않는 해와
온통 붉게 물든 마을 광장
뾰족한 지붕 그림자가 올라 선 계단
그 아래 돋을새김처럼 뚜렷한 피사체
여자가 남자 쪽으로 휘어져 있다
남자가 건네는 연어가 무거운지
나도 휘어지고
여행 버킷 북
남은 페이지와 남겨진 페이지 사이에
삶이 무미하고 건조하다면, 대륙의 가장자리 피오르 협곡으로!
오늘의 나와 그 날의 너는
그곳이 죽도록 그립다
너는 이미 그것을 입증했다
죽음의 세계에서도 죽도록 그리운 게 있을까?
책에서
제겐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습니다,*
서점을 지나 깜깜한 낭하를 함께 걸은 적 있다
갑자기 사라진 우리들
서서히 나타나던 윤곽들
고독이 네 얼굴을 하고 내 손을 쥐고 있었다
침대 끝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카니발은 시작되고
카메라
횡단열차 유리창에 너의 모습이 첨경으로 찍혀있다
셔터를 누르던 찰나에 네가 보았던 너를
내가 보고 있는 거다
나는 네 눈을 쓸어 감긴다
누가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뒀나
오후의 방은 백색의 빛으로 가득하다
*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에서
- 포엠포엠 202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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