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쩌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텀블링(tumbling)

by 즐팅이 2020. 3. 20.


텀블링(tumbling)

 

 

 

 

나는 우아하게 착지하려고 했어

 

맨손으로 공중을 짚을 때

오늘은 얼마나 높이 도약해야 다다를 수 있는 고도인지

얼마큼 무릎을 접어야 더 오래 떨어질 수 있는 밑바닥인지

 

곳곳에 당신의 편린들이 있어서 의심하지 않았어

 

당신이 은밀한 손으로 등을 받쳐줄 때

은밀하지 않은 목소리로 충고할 때

등에 통각이 돋아나는 느낌

 

공중회전에서 당신은 한 바퀴를 원했고

나는 두 바퀴를 고집했지

 

당신은 자꾸 날아가는 새를 만지려고 했어

언제나 내 몸을 반경 속으로 집어넣으려고만 했지

 

그럴 때마다 새의 젖은 울음소리가 빠져나오곤 했는데

흩어지지 않으려면 도대체 몇 호흡을 멈춰야 할까

 

완벽하게 착지하려면 얼마나 더 여백을 견뎌야 할까

 

발에도 슬픈 목이 존재하는 줄 모르고


- 작가들 2020 봄호




'얼굴을 내민 시[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팬데믹(Pandemic)  (0) 2020.07.31
이소(離巢)  (0) 2020.03.20
원탁  (0) 2020.03.11
발췌  (0) 2020.03.11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  (0) 2020.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