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내민 시[발표작]142 기형의 도시 기형의 도시 도시 끝까지 가보자, 우리안개는 거기서부터 바람이 분다 너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챙이 넓은 모자를 고쳐 쓴다 언제부터 모자는 거기에 있어야 하는 물체가 된 걸까 우리는 부딪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걷는다 가끔 거리의 이정표를 보려고 너는 까치발을 하고나는 그런 너를 보려고 멈춘다 나는 태어나기기도 전에 너를 배웠구나 가드레일을 따라 걷는다자동차 안개등이 힘겹게 조도를 유지하며 주춤주춤 지나고이곳엔 영혼이 많으니 조심하세요* 불쑥 말하는 사람은 발목이 없다계속 걷는다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의 경계는 누가 그은 걸까 내가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지너와 나의 독백을 우리의 대화가 삼킨다 외곽에 가까워지는 동안숨이 차올랐다 아주 작은 물방울 속을 잠영하고 나온 잠수부처럼, 우.. 2024. 6. 6. 미기록종 미기록종 몰라서 좋았다종, 속, 과, 목, 강, 문, 계 같은 건 그래도 태어나고 그러므로 자라고 난 코피노* 누군가에겐 기쁨이 아니었다 내 주변은 온통 벽 벽은 또 다른 인칭 자생이란 스무 살을 마흔 살처럼 사는 거다 가끔은 주머니를 뒤적이다 다 구겨진 과거를 계산대 위에 주섬주섬 올려놓는 단골의 긴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거다 그 사람은 멀쩡해 보이지만 등 뒤가 공허로 깊게 파여 있다 진실을 규명하라, 지나는 행렬의 구호 소리에 우리의 진실은 멈춘다 놀라지 않는다 거짓이 거짓을 낳는다는 말은 정말이다 거짓으로부터 시작된 잉태가 외삼촌이 아버지가 되는 거짓을 낳았다 그는 죽는 날까지 나를 기피생물종으로 분류했다 나는 피와 피의 접속점그토록 불결한가 어떤 감정도 없이 어스름이 깔리고 있다 유리.. 2024. 5. 24. 관계 관계 1나는 무너져 모양이 바뀌는 것에 대해생각한다 철거 공사 시공계획서를 들고 벽을 깬다, 파벽돌을 모아 화단 경계를 형성한다그래도 아름답지 않다 2이 관계는 어떤 생각도 밖으로 나갈 수 없게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생각은 번지고 스미는 물성하나의 덩어리가 될 때까지 우리는 괴변이다 3둘이 걷다가 밖에서는 보이는데 안에서는 볼 수 없는 디저트 가게를 발견한다 의심은 사라질까 증폭될까 창가에 앉아 몸에 칼집을 내고도 멀쩡한 π를 쪼개 먹는다 사과와 π는 분리되지 않고 흩어진다 둘은 이란성 쌍둥이다 - 《포엠피플》 2024 여름호 2024. 5. 24. 구체관절 인형 구체관절 인형 받아들이는 겁니다리듬을 206개 뼈의 방식을격렬하게, 기계 인간이 되는 겁니다 저 거울 속 투영체는 실존입니까 가면입니까 비트에 취해한 호흡마저 흘러넘칠 때내가 다리 하나 분실된 불량품이란 걸 망각합니다 관절과 관절을 조였던 생활이 잠시 헐거워지는 이 밤이반복 재생됩니다 고요한 몸짓역동적인 멈춤누가 나를 자꾸 되감아 놓는 걸까요 때문에 내일은 늘 내일로 밀려나 있죠 춤은,내가 나에게 하는 무언(無言)의 답살아있냐는 물음에감정을 이해하는 인간처럼…… 그런데 내 이 기분이 쓸모없음으로 돌아설 때 혼잣말로 속삭인 적 있습니다.그거 아니? 네 다리는 끝까지 수선되지 않겠지만, 언젠가 저 생존 배틀 무대에 올라갈 거야 슬픈데 웃음이 멈추질 않아요 - 《포엠피플》 2024 여름호 2024. 5. 24. 볼 트래핑 볼 트래핑* 정강이에서 발등으로 발등에서 가슴으로 이런, 당신의 바깥으로 굴러떨어졌다 나를 벗어나면 어디나 낭떠러지야 당신이 거듭 속삭일 때마다귀가 먼저 닫히고 팔다리가 말려드는 것 같다 나는 어쩌다 공벌레처럼안쪽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정지와 동시에기어든 내 안은 어둡고 축축하다 쓸모없는 그림자를 더 먼 곳에 버리려면반경을 이탈해야 하는데 당신은 계속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끝으로 능숙하게 내 표정을 다룰 줄 안다길들여지는 순간 관계는 죄가 된 것만 같은데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질문을 품는다나는 바닥이 불안한 걸까 공중이 더 불안한 걸까 이런, 한 번 더 튕겨나간다내가 꼭 당신의 분신이 된 것만 같다 *볼 트래핑 - 적절한 동작을 통해 볼이 지니고 있는 운동에너지를 급격히 .. 2024. 5. 24. 틔움 틔움* 좀 비켜 줄래요 그늘이 지네요 이 씨앗은 배양을 참 좋아해요 커튼이 없는 방에서 깨어나요 여백 없이 겹겹이 쌓여 있는 빛 나는 매번 과장되는데 왜 눈뜨면 지금인 걸까요 생장등이 켜지네요 정수리에 쏟아지는 광량 웃자란 기분 그녀가 늘 같은 표정을 갖는다는 건 어떤 희망일까요 빛의 반경 너머엔 생기를 잃은 바깥이 있어요 그녀는 무늬만 사람인 것 같아요 토양과 기후가 맞지 않아 시들어가는 식물처럼 보이네요 방의 표면에 퇴적되어 있는 물질처럼 혼곤한 그녀의 슬픔 싹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접시를 꺼내와요 나를 창가에 두고 접시 위에 떨어지는 눈물, 한숨, 편린 캄캄한 땅속에서 나가야겠어요 창문 너머엔 인공 호수가 있고 그녀와 함께 걷던 사람은 없고 인공 날씨는 너무 황홀하니, 어떻게든 그녀와 나는 시.. 2024. 3. 4. 이전 1 2 3 4 5 ··· 24 다음